"바다를 잇는 사람들"
vol.67 바다를 살아가는 네 사람의 시간
남해의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겹겹이 흐르고 있다. 물때를 살피고, 바람의 결을 읽고, 손끝으로 계절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 우리가 축제에서 마주하는 해산물은 단지 바다의 맛이 아니라, 그 바다를 오래 살아낸 사람들의 하루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물속으로 들어가 삶을 건져 올리고, 어떤 이는 갯벌을 지키며 마을의 생기를 붙들고, 또 어떤 이는 오래된 가업 위에 자기 이름을 새기며 바다의 맛을 전한다.
올해 해산물 축제도 풍성한 먹거리와 활기찬 장면들로 남해의 바다를 가까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번 호에서는 먼저 바다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따라가 보려 한다. 해녀의 숨비소리, 죽방렴 어부의 손끝, 갯벌을 돌보는 어촌계장의 마음, 그리고 남해 수산물의 이름을 다시 세우는 대표의 시간이 모여 오늘의 바다를 만든다. 바다는 저절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 곁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을 때, 비로소 한 지역의 풍경이 되고 기억이 된다.
오래된 어법을 지키는 일, 사라지지 않게 명맥을 붙드는 일, 아이들이 다시 오고 싶은 갯벌을 만드는 일, 그리고 정직한 손맛으로 남해의 바다를 전하는 일까지. 이번 이야기는 해산물 축제의 풍경보다 조금 더 안쪽에 있는, 남해 바다의 진짜 얼굴에서부터 시작된다.
* 남해로ON 뉴스레터는 남해의 사람과 공간, 그리고 이곳에서 새롭게 써내려 가는 여행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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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의 시간을 데리고 흐른다. 어떤 이는 그 앞을 스쳐 지나가고, 어떤 이는 그 안으로 들어가 삶을 건져 올린다. 김정심 해녀는 오랜 세월 그렇게 바다를 드나들며 살아온 사람이다. 떠나 있던 시간마저 결국 다시 바다로 돌아오게 만들 만큼, 그의 삶에는 바다가 깊이 스며 있다.
지금 남해에서 해녀의 이름을 이어가는 일은 점점 더 귀해지고 있다. 그래서 김정심 해녀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생업을 넘어, 사라지기 전에 오래 붙들어두어야 할 시간처럼 다가온다. 이번 인터뷰는 바다를 일로 삼았던 한 여성의 삶이자, 남해 바다가 아직 품고 있는 오래된 숨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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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남해 미조 바다에서 물질을 이어가고 있는 해녀 김정심입니다. 남해에서 해녀의 시간을 지켜가는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금도 바다에 나가 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바다 가까이에서 자랐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미역을 캐고 소라를 따러 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고, 그래서 제게 바다는 늘 두려움보다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이면 해녀를 해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저는 아버지 반대로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스물셋에 처음으로 해녀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남해에 온 것은 아닙니다. 제주와 부산을 거쳐 1985년에 미조로 오게 됐습니다. 잠시 해녀 일을 하다가 삼성전자 판매점을 오래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장사라는 게 제게는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가게를 접고 나니 다시 떠오른 것이 바다였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처럼, 다시 해녀의 삶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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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제주에서는 살기가 어려우면 많은 여성들이 해녀 일을 시작했습니다. 해녀는 단순히 물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저 역시 해녀 일을 하며 두 딸을 키우고 공부시키고 시집까지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게 해녀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을 지켜낸 시간이었습니다.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은 스스로 일하고, 노력한 만큼 벌 수 있다는 점입니다.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큽니다. 바위 위에서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가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뭉클합니다. 다들 가족을 위해, 삶을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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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하루는 시계보다 물때표에 더 가깝습니다. 조금, 한물, 두물, 서물에 따라 바다에 들어가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들어가고, 어떤 날은 점심 무렵에 나가기도 합니다. 육지에서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선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갑니다.
보통 세 시간에서 세 시간 반 정도 작업하고, 날이 따뜻하면 더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 일에서 가장 큰 변수는 비보다 바람입니다. 풍랑주의보가 뜨면 작업을 접어야 합니다. 내가 채취한 것이 곧 수입이 되지만, 그 몫은 어촌계와 선주와 함께 나눕니다. 결국 해녀의 일은 혼자 하는 노동이 아니라 바다와 공동체 안에서 이어지는 생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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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남해 바다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예전에는 더 깊이 들어갔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무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쌓였고 몸도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바다에 들어가면 몸이 먼저 기억합니다.
신기하게도 물속에 들어가면 세상사 생각이 사라집니다. 문어가 있을 자리, 소라가 있을 자리를 살피며 호흡의 흐름을 따라갈 뿐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잡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시간이 좋습니다. 숨비소리를 내며 올라올 때면,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아냈다는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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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다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바닷속 풍경이 훨씬 풍성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고기도 줄고, 소라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저는 낚시미끼와 각종 시설, 무분별한 활동들이 바다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 변화를 더 빨리 느끼게 됩니다.
바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분명히 몸살을 앓는 중입니다. 해녀는 기계로 바다를 훑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연 흐름에 따라 필요한 만큼 거두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해녀의 일은 단순한 채취가 아니라, 바다의 순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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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바다를 놓지 않은 사람
지금 남해에서 일하는 해녀들은 대부분 오랜 세월을 바다에서 살아온 분들입니다. 가장 젊은 해녀도 예순셋이고, 가장 연세 많은 분은 여든셋입니다. 그만큼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후속 세대를 키우는 일입니다. 제주에는 해녀학교가 있고, 다른 지역도 양성 체계를 만들고 있는데 남해는 아직 그런 관심이 부족한 편입니다.
저는 해녀가 옛 직업으로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문화이고, 삶의 방식이며, 바다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려면 지원도 필요하고 기본적인 환경도 마련돼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해녀들이 비를 피하고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장 같은 기본 공간입니다. 우선 작은 기반부터 갖춰져야 합니다.
삶을 돌아보면 여러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저를 다시 붙든 것은 바다였습니다. 물질을 하며 자식을 키우고 가족을 건사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내 일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해녀의 삶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해녀 일은 힘들고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해녀의 생업을 ‘저승 돈’이라고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일을 하며 살아온 시간이 귀합니다. 바다도 강하고, 그 바다를 건너온 해녀도 강합니다. 저는 그 시간을 밑천 삼아 지금도 제 삶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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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촌
"해녀들의 선장이 운영하는 식당입니다" |
스페이스미조
"옛 냉동창고가 새롭게 태어난 공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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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진 자리마다 마을의 시간이 드러나는 곳이 있다. 둔촌의 갯벌은 단순히 체험을 위해 들르는 바다가 아니라, 오래 이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과 마음이 쌓여 있는 자리다. 고운 모래밭 위로 아이들이 뛰놀고, 체험을 마친 사람들이 웃으며 돌아가는 장면은 이 마을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둔촌의 바다는 풍경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의 온기로 오래 남는다.
조서하 어촌계장은 그 자리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다. 바다 일을 하며 살아왔고, 다시 어촌계를 맡으며 둔촌의 갯벌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제대로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이곳을 돌보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갯벌을 운영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게 마을을 붙들고 있는 한 사람의 기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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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결국 이 자리로 불러냈습니다
저는 둔촌마을이 고향이며, 지금도 이곳 고향에서 살고 있는 조서하입니다. 저는 최연소 어촌계장이었습니다. 서른 살 무렵에 처음 어촌계장을 맡았던 적이 있거든요. 어촌계장만 쭉 한 건 아닙니다. 젊었을 때는 정치망 어업도 했고, 스물두 살부터는 정치망 사무국장 일을 하며 바다와 가까운 일을 오래 해왔습니다. 그렇게 한평생 바다와 가까운 일을 해오다가, 8년 전쯤 그 일을 잠시 내려놓게 됐습니다.
가족으로부터 이어받아 오랫동안 해오던 일이기도 했고, 바다 일이라는 게 몸도 마음도 많이 쓰이는 일이라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제가 가장 잘 알고 오래 봐온 것도 이 마을과 이 바다였습니다. 어촌계를 조금 더 알리고 싶었고, 둔촌이 가진 좋은 자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돌아보면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도, 결국은 오래 봐온 바다였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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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의 바다는 참 고운 모래밭이 좋습니다
둔촌마을 바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래사장이 참 곱고 넓다는 점입니다. 남해 바닷가라고 하면 바위나 자갈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도 많지만, 이곳은 아이들이 와도 다칠 걱정이 적을 만큼 부드러운 모래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갯벌 체험을 하러 오는 분들도 편안하게 바다를 접할 수 있고, 요즘은 건강 걷기나 맨발 걷기를 하러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지족 효소마을 쪽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인근 지역에서 일부러 이 모래밭을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남해는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고 두 번 들어오는 바다입니다. 둔촌의 갯벌도 그 흐름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이 자리는 단순한 체험장이 아니라, 고기들이 알을 낳고 여러 생명들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이곳은 안전하고 깨끗한 갯벌로 알려져 있었고, 마을 안에 청소년 수련원이 두 곳이나 자리하고 있을 만큼 아이들과 함께 오기 좋은 곳으로 익숙했습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머물게 되는 힘이 있는 바다라고 생각합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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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은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힘입니다
우리 마을의 갯벌은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닙니다. 마을이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 안에서 마을도 함께 활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체험객이 많든 적든, 오신 분들이 이곳을 잘 경험하고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자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는 날에는 하루에 천 명 가까이 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어촌계원들만으로는 부족해서 인근 지인들까지 함께 도와 운영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둔촌마을은 주민 수가 많지 않고, 고령화도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예전보다 주민 숫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 마을에서 갯벌 체험장은 단순한 수익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주차 공간이 협소해도 어른들이 하나하나 협조해주시고, 조개를 까고 가져가는 일까지 도와 주시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갯벌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을 어른들에게는 큰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시고, 체험객들이 잘 놀다 가는 모습을 보며 마을도 다시 생기를 얻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갯벌이 우리 마을의 생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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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갯벌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유심히 살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저희도 한 달에 한 번 청소를 하고, 치어도 우리 돈으로 직접 사서 뿌리며 바다를 돌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조개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도 있고, 항만이 생기면서 모래가 유실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어릴 때 봤던 바다와 지금의 바다가 다르고,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많이 달라졌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체험장을 운영하는 것만큼 바다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바다가 오래 남아야 한다는 사명이 큽니다. 지금 편리하게 쓰는 것이 나중에 더 큰 손실이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저희는 늘 그 균형을 생각하게 됩니다. 적어도 우리 마을만큼은 보물섬 남해의 생태계 환경을 잘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준을 지켜가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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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제대로 배우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둔촌갯벌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자원으로 쏙도 있지만, 우럭조개도 중요한 자원입니다. 다만 조개는 파면 팔수록 줄어드는 자원이라, 단순히 많이 캐 가는 체험으로만 운영하기는 어렵습니다. 저희 마을은 쏙을 잡는 구역과 우럭조개를 캐는 구역이 따로 있고, 우럭조개는 더 멀리 나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날에만 가능한 체험도 있어서, 자연의 상황을 잘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체험장을 운영할 때 특히 아이들에게 많이 신경을 씁니다. 체험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드리고, 다치지 않게 도와드리고, 단순히 채취만 하고 가는 시간이 아니라 바다를 배우는 시간으로 남길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분명 있습니다. 조개를 얼마나 많이 가져가느냐에만 집중하거나, 직접 가져온 삽으로 무리하게 파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원은 계속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많이 가져가도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 체험의 재미만큼이나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각자의 에티켓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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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는건 이곳에서 웃고 가는 사람들의 기억입니다
둔촌갯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아이들이 모래를 만지며 웃는 모습입니다.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느끼는 재미는 생각보다 단순하고도 분명합니다. 아이들이 맨손으로 모래를 만지고, 게를 잡아보고, 바다 생물을 직접 보고 만지면서 자연을 몸으로 배우는 일입니다. 어른들에게는 잠깐의 체험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오래 남는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둔촌갯벌의 진짜 매력은 얼마나 많이 잡았느냐보다, 이곳에서 어떤 감각을 배우고 어떤 기억을 안고 가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기억에 남는 체험객도 있습니다. 서울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여름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라 우럭조개가 잘 나오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해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았다는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조개를 많이 잡아서가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태도와 마을의 분위기 덕분에 남해라는 곳을 좋게 기억하게 됐다는 말이 참 오래 남았습니다. 저희에게는 조개 한두 마리보다 그런 기억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결국 사람들이 가져가는 건 해산물만이 아니라, 남해에 대한 좋은 인상과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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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분명합니다. 둔촌갯벌유어장을 더 잘 운영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의 가치를 알게 해서, 결국은 젊은 사람들이 이 마을에 다시 들어와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둔촌마을은 조용하고, 주민도 많지 않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장 하나를 운영하는 일도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마을의 미래와 연결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이 단순히 한철 체험장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합니다. 바다를 배우고, 자연을 아끼는 법을 익히고, 마을과 사람의 온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자리로 오래 남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마음에 이끌려 둔촌에 새롭게 뿌리내리는 젊은 사람들도 생기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둔촌의 갯벌은 단순한 모래밭이 아니라, 마을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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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갯벌체험장
"남해에 오시면 저희 체험장을 꼭 방문하세요" |
지족구거리
"죽방렴은 물론 매력있는 상점들이 많은 거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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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은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적이 없는데도, 오래 지나고 나면 가장 깊은 자리까지 스며들어 있다. 해여울 최인영 대표에게 남해 바다가 그랬다. 서울에서 자라 바다와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오던 사람이 결혼을 통해 남해에 들어왔고, 낯선 시골의 하루와 바다의 시간을 하나씩 배워가며 결국 이곳의 사람이 되었다. 버티기 위해 살아낸 날들, 어느새 4대째 이어진 가업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세워나가는 힘이 되었다.
해여울이라는 이름에는 브랜드 이상의 시간이 담겨 있다. 오래된 바다의 일, 가족의 생업, 그리고 끝내 자기 이름으로 삶을 일으켜 세운 한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흐른다. 이번 이야기는 수산업을 하는 대표의 이야기에 앞서, 낯선 바다에 스며들어 마침내 자기 자리를 만든 한 여성의 시간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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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스며들어 자기 이름을 만든 사람
저는 해여울을 운영하고 있는 최인영입니다. 저희 일은 시할아버님 때부터 시작된 일이라 어느덧 4대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화전수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배 이름도 화전호였지만, 2012년에 ‘해여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브랜드를 세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해누리’처럼 바다를 다 누린다는 뜻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조금 더 고민하다가 ‘여울’이라는 말이 주는 흐름과 힘이 좋아서 해여울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습니다. 물줄기가 힘차게 흘러 바다로 나아가는 느낌이, 제가 살아온 시간하고도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바다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자랐고, 학교를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될 줄 알았습니다. 유학도 꿈꾸고 있었고, 제가 이렇게 남해에서 수산 일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됐고, 남편을 따라 남해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잠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아버님께서 “내랑 3개월만 한번 배워 볼래?” 하셨는데, 그 3개월이 어느새 30년이 넘는 시간이 됐습니다. 돌아보면 그 말 한마디가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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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온 새댁이 그렇게 남해 사람이 되어갔다
처음 남해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몇 번 와본 적은 있었지만, 막상 여기서 산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기와집에서 자고, 노구마을의 공기를 마시고, 바다 가까이서 ‘어쩌다 종종’ 살아보는 경험 자체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삶이 되니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시골에서 적응하며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집안에서도 막내였고, 양말 하나도 직접 빨아본 적 없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시집와서 바다 일을 배우고, 시골살이를 익히고,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다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책을 좋아하고, 여러 문화를 가까이하며 살던 제가 전혀 다른 환경으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결혼 전과는 또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경상도 남자구나 싶을 만큼, 삶의 방식도 말투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오게 한 건 결국 사람들의 힘이었습니다. 특히 시아버님이 저를 참 많이 믿어주시고 챙겨주셨습니다. 그 믿음 속에서 저는 조금씩 남해 사람으로, 또 이 집안의 사람으로 스며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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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가장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저 살기 위해 일했습니다. 예전에는 뱃일을 하고 수산물을 팔아도 소득이 모두 부모님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저희 몫으로 남는 것이 많지 않았고, 아이들 학교 회비처럼 꼭 필요한 돈조차 마음 편히 부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제 힘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수산물 일도 하고, 커피 장사도 하고, 저녁에는 학습지 교사 일까지 했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쁘게 살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쉼 없이 달려온 시간입니다.
스물다섯에 시집와서 저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버텨온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제가 모성애가 아주 크다거나, 무슨 낭만으로 이 삶을 살아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선택한 삶이니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누구에게 기대기보다 내 삶은 내가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힘들어도 그 안에서 조금씩 제 역할을 찾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이어오다 보니 어느새 이 삶이 제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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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따라 나서고 트럭을 몰며 제 자리를 만들어갔다
일손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정말 1인 5역을 했습니다. 배도 따라 나가고, 그물도 잡아보고, 뱃사람들 식사도 챙기고, 판매도 하고, 트럭도 직접 몰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다 했나 싶을 만큼 몸으로 부딪치며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단순히 돕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함께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아버님이 저를 많이 신뢰하시고 점점 더 큰일을 맡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시아버님은 면장까지 하셨던 분이라 사람도 많이 아시고, 저를 여러 자리에 소개해주시며 함께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조금씩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남해 시골에서는 여성들이 앞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지만, 저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아버님께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역할이 넓어졌고, 1999년에 저희 이름으로 어장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정말 제 삶을 제가 이끌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이후 2010년 무렵 공장을 세우면서는 더 이상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밀고 나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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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이어온 가업 위에 제 방식의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다
저희는 늘 열심히 벌고, 모으고, 다시 투자하며 살아왔습니다. 적금을 넣고, 버티고,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쌓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배를 사고 공장을 짓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일을 단순히 이어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만의 이름과 방향으로 다시 세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나온 이름이 해여울입니다.
저는 이 이름에 단순한 브랜드 이상의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100년 가까이 이어진 가업의 시간을 잇되, 그 안에 지금 우리의 태도와 앞으로의 방향까지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해여울은 예전 이름을 지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을 지금의 방식으로 다시 불러낸 이름에 가깝습니다. 가업이라는 건 그냥 물려받는다고 이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시대에 맞게 다시 다듬고, 다시 믿음을 얻어야 비로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에게 해여울은 바로 그런 다짐이 담긴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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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는 건 정직하게 만든 맛과 오래 지켜온 방식입니다
해여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정직입니다. 예를 들어 멸치 맛을 결정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이 소금입니다. 저희는 소금을 정량으로 넣고, 국내산 천일염을 오랜 시간 간수한 뒤 사용합니다. 그런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멸치를 삶고 말리고 손질하는 과정 하나하나에도 4대째 이어온 노하우가 있습니다. 이런 건 겉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시간이 쌓여야만 생기는 차이입니다.
저는 좋은 수산물이라는 게 거창한 기술보다 기본을 속이지 않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다는 날마다 다르고, 멸치도 날마다 다르고, 계절과 물때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그 안에서 맛을 일정하게 지키려면 결국 정직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해여울의 맛이 오래 사랑받기를 바란다면, 그 시작은 늘 정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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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멸치는 맛으로 먼저 기억되는 바다의 얼굴입니다
저는 남해 멸치가 정말 맛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은 남해안이라도 지역마다 바다의 결이 다르고, 수심과 파도, 물의 흐름이 다 다릅니다. 그 차이가 결국 멸치 맛에도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남해 멸치는 유난히 맛이 좋고, 먹어본 분들은 확실히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바탕에는 적당한 수심과 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정한 바다가 있습니다. 남해 바다가 지금까지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되어온 것도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해주시는 말도 비슷합니다. “멸치 맛이 다르다”, “정말 맛있다”, “이건 진짜다” 같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는 사진을 아주 잘 찍는 편도 아니고, 말로 포장을 잘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한 번 드셔보신 분들이 다시 찾고, 주변에 소개 해주실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서울에 있는 친구가 자기 친구들에게 “내 친구가 만든 멸치가 최고다”라고 자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말이 참 오래 남습니다. 결국 가장 큰 광고는 맛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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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여울 (화전수산)
"저희가 운영하는 매장입니다" |
남해 노구마을
"탁 트인 남해 바다를 볼 수 있는 한적한 마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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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은 결코 같지 않다. 어떤 이는 그 물살을 풍경으로 바라보고, 어떤 이는 그 안에서 평생의 일을 행한다. 김민식 어부에게 죽방렴은 그런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곁에서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익혔고, 설계도 없이도 손이 먼저 기억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래된 어법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오래된 시간을 지킨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죽방렴은 단순히 옛 방식의 고기잡이가 아니다. 태풍에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시간, 가족과 함께 버텨온 생업의 무게, 그리고 끝내 누군가는 이어가야 한다는 굳센 의지가 함께 쌓여 있는 삶에 가깝다. 남해의 빠른 물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어부의 오래된 손의 기억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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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해에서 죽방렴을 하고 있는 김민식입니다. 원래 죽방렴은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형님이 조금 하다가, 지금은 제가 맡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혼자 한 것은 아니고, 예전에는 가족이 같이 도와가며 했습니다. 저는 그 곁에서 아버지 일을 도와주는 쪽이었고, 혼자서 본격적으로 맡아 하게 된 건 19년쯤 됐습니다. 그렇게 보면 제 삶은 오래전부터 늘 죽방렴 가까이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하시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자랐기 때문에, 특별히 누가 앉혀놓고 가르쳐줬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보고 자랐고, 도우며 익혔고, 어느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제 손에 붙은 일이 되었습니다. 설계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보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오래 젖어온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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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의 역사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다고 들었고, 문헌으로는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국가유산 관련 평가를 할 때도 역사성만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방식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죽방렴의 가치는 단순히 오래됐다는 데만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상들이 남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어장을 만들고, 자연 지형을 가장 지혜롭게 활용해왔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창선도 사이 이 해협은 썰물이 빠져나갈 때 물살의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죽방렴은 바로 그 빠른 물살을 활용해 고기를 잡는 방식입니다. 억지로 바다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 바다가 흘러가는 힘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고기를 맞이하는 어법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죽방렴이야말로 조상들이 자연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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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달라졌어도 잡는 원리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참나무 말목을 사람 손으로 직접 깎고, 하나하나 엮어서 어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인력도 부족하고 세상이 달라져서 크레인 같은 기계의 힘을 빌려 설치하고 보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수월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설치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 고기를 잡는 원리 자체는 예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결국 죽방렴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같은 흐름을 따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옛 방식과 지금 방식이 조금 달라 보일 수 있어도, 죽방렴이 가진 핵심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다를 읽는 법, 물살을 활용하는 법, 그리고 고기를 맞이하는 이 어법은 여전히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그 방식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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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늘 사람을 작게 만드는 힘을 가졌습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힘든 일도 참 많습니다. 가을에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배가 작아서 전복될 뻔한 적도 있었고, 실제로 파도에 휩쓸리듯 헤엄을 친 적도 있습니다. 태풍이 오는 날이면 자연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은지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것만 해도 태풍 매미 때 죽방렴이 반파가 됐고, 그걸 다시 복구하는 데 엄청난 노력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사하라 태풍이 왔을 때 죽방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바다에서 일한다는 건 단순히 고기를 잡는 일이 아닙니다. 가오리에 쏘이는 일처럼 몸으로 겪는 위험도 있고, 태풍 하나에 몇십 년 이어온 자리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죽방렴은 낭만적인 풍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자연을 견디고,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고, 그래도 또 바다로 나가는 사람의 끈기가 함께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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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죽방렴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약 30퍼센트 정도는 승계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을 단순히 물려받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방렴은 제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줄도 잘 매고, 어장 원리도 잘 알고, 저는 이 일이 제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제가 가장 잘 아는 일이고 가장 익숙한 일입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이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뱃일을 잘 하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고 다른 선택지가 많아지면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그게 참 아쉽습니다.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그리고 이렇게 희귀한 어법을 이어갈 사람이 줄어든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까지 인정받은 방식이라면, 더더욱 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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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죽방렴 일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는 제가 이 일을 이어가는 걸 반대하셨습니다. 힘든 일이고, 바다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아셨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늘 아버지가 하던 일을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죽방렴 일을 계속 놓지 않았고, 마음이 있으면 결국 이어가게 된다는 걸 제 삶으로 느껴왔습니다.
저는 오히려 제 자식들이 죽방렴 일을 하는 것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아이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큰딸은 뜻이 있었고, 작은딸은 사위 쪽이 더 하고 싶어 하는데 딸이 망설이는 분위기입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딸들이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어법이 이어진다면, 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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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은 단순한 고기잡이 방식이 아닙니다. 저는 무엇보다 죽방렴 어법 자체를 많이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연 지형을 활용하고, 물살의 힘을 읽고, 바다를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어져 온 이 어법은 충분히 보존할 가치가 큽니다. 그래서 저는 꼭 대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업의 한 방식이지만, 앞으로는 관광자원으로도 더 넓게 알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희귀하고, 또 남해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유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죽방렴을 바라볼 때 늘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내가 이어간다는 자연스러운 책임감이고, 다른 하나는 이 귀한 방식이 내 대에서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제가 계속 이 일을 하는 것도 결국 그 두 마음 때문입니다. 죽방렴은 저에게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누군가에게 꼭 넘겨주고 싶은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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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 전망대
"죽방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
죽방렴 홍보관
"죽방렴의 역사와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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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저절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 곁에서 살아낸 사람들이 있을 때, 비로소 한 지역의 풍경이 되고 기억이 된다. 이번 호에서 만난 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남해 바다를 이어가고 있었다. 누구는 물속으로 들어가고, 누구는 물살을 읽고, 누구는 갯벌을 지키고, 누구는 바다의 맛을 오래 믿게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남해의 바다는 오늘도 누군가의 손과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여행에서 만나는 바다도 어쩌면 그런 사람들 덕분에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인지 모른다. 한 번 맛보고 지나가는 해산물보다, 한 번 듣고 오래 남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깊게 마음에 남을 때가 있으니까. 이번 이야기가 남해 바다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계절의 기록으로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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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증 혜택 소식]
남해에서 놀고, 먹고, 배우는 하루, 3GO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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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 방법 및 혜택 : 해당 기간 중 남해로ON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남해 로컬스테이 3GO 캠프 앵콜상품(5월 30일 ~ 31일 진행)을 구매한 뒤, 프로그램 참여시 남해로ON 주민증을 제시하면 남해 화전화폐 3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화전화폐는 남해 지역 내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로, 여행 중 식사, 카페, 장보기 등 다양한 로컬 소비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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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구매 방법 및 이용 가능 일정은 3GO 캠프 운영처를 통해 사전 확인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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