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꽃이 핀다는 건"
vol.64 남해 꽃 명소에서 만나는 마을의 풍경
남해의 봄은 꽃으로만 오지 않는다. 벚꽃이 피고, 유채가 번지고, 바다를 따라 바람의 결이 달라지는 순간, 마을의 표정도 함께 바뀐다. 어느 길에는 분홍빛이 머물고, 어느 언덕에는 노란 물결이 번지며, 익숙하던 풍경은 계절을 입고 다시 새로워진다.
올해도 남해의 봄은 또렷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상주 두모마을에는 다랑이논 지형을 살린 새로운 공간 파라다랑스가 문을 열었고, 설천 왕지벚꽃길과 가천 다랭이마을에도 다시 꽃의 시간이 찾아왔다. 꽃은 해마다 같은 자리에 피지만, 해마다 조금씩 다른 봄을 남긴다.
이번 호는 꽃 명소를 단순히 나열하기보다, 남해의 봄이 머무는 풍경을 천천히 따라 가보려 한다. 바다와 꽃이 한 장면 안에 겹쳐지는 길, 층층이 이어진 마을의 결, 그리고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되는 계절의 기운까지. 남해의 봄은 보는 풍경을 넘어, 오래 기억되는 한 계절의 장면으로 남는다.
* 남해로ON 뉴스레터는 남해의 사람과 공간, 그리고 이곳에서 새롭게 써내려 가는 여행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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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마을에는 봄마다 노란 물결이 번진다. 바다를 따라 들어선 작은 어촌마을의 다랑논 위로 유채꽃이 피고,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다. 지금의 두모마을 풍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켜보며, 비어 있던 땅에 새로운 장면을 상상한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됐다.
손대한 이장은 두모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다. 이장을 맡은 지 어느덧 17년. 그에게 두모마을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삶의 시간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 크다 큰, 집 같은 마을이다. 유채꽃 명소로 알려진 파라다랑스 역시 그런 마음에서 시작됐다. 쉬고 있던 다랑논을 바라보다가, 저 자리에 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했던 순간. 그 상상은 개인의 바람으로만 머물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꾸는 두모의 봄으로 자라났다.
꽃이 피는 계절만이 아니라, 그 꽃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시간까지 품고 있는 마을. 두모마을의 봄을 오래도록 지켜온 손대한 이장과 그의 부인인 강미라 사무장을 함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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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장을 맡은 지도 17년 정도 됐습니다. 두모마을은 제게 단순히 사는 마을이 아니라, 제 삶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곳입니다. 자연의 색감도 좋고, 마을의 평온함도 좋고, 다랑논이 펼쳐진 풍경도 참 좋습니다. 제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보이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집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조금 더 큰 의미의 집입니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한데 모이는 큰집처럼 느껴집니다. 두모마을 자체가 큰집이고, 그 안에 있는 집집마다 작은 집들이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늘 ‘우리의 이 마을은 나부터 지킨다’는 마음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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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마을이 지금처럼 알려지기 전, 이곳의 다랑논은 한동안 쉬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던 곳이었지만 공간도 협소했고, 어르신들도 점점 연세가 많아지면서 휴경지로 남게 됐습니다. 어느 날 가만히 그 땅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자리에 꽃이 피면 참 예쁘겠다고요. 정말 시작은 그 소나기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품었던 생각을 마을회의에 부쳐 주민들과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추진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두모마을의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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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랑스'는 비어 있던 땅 위에 만든 새로운 봄
파라다이스(paradise) 더하기 다랑논을 합해 이름 지어진 ‘파라다랑스’는 2005년 무렵부터 조금씩 구상을 시작한 공간입니다. 이 작은 자리를 꽃밭으로 한번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이후 2014년에 농촌테마공원 공모에 선정되면서 군에서 땅을 매입하고 공간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널리 알려졌던 건 아닙니다.
고맙게도 사진작가분들이 이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소개해주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두모마을의 봄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지금은 봄이 되면 유채꽃 풍경을 떠올리며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 많지만, 그 시작은 그저 조용한 상상 하나였습니다. ‘비어 있던 땅에 새로운 계절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마음’, 그게 파라다랑스의 출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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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풍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사하지만, 그 안에는 꽤 긴 시간의 손길이 들어갑니다. 10월 중순이면 논두렁을 베고 씨를 뿌리고, 봄에 꽃이 지면 열매를 털고, 여름에는 다시 메밀을 심습니다.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이 이어지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일부 행정 지원이 더해졌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움직이는 건 대부분 주민들입니다. 열 분 남짓한 주민들이 함께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특별한 사명감으로만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 마을은 우리가 가꿔야지’ 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꽃을 심는다는 건 단지 예쁜 풍경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마을을 스스로 돌보고 지켜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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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유채꽃이 사람들을 마을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실제로는 꽃을 보러 왔다가 두모마을 자체를 기억하고 가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그 점이 참 고맙습니다.
계단식 다랑논에 유채꽃이 피어 있는 장면도 물론 아름답지만, 그 풍경을 주민들이 함께 지키고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두모마을은 그냥 예쁜 마을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며 지속 가능하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충만한 있는 마을입니다. 파라다랑스를 통해 방문객들이 그런 두모의 모습까지 함께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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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느끼는 계절
해마다 봄이 와서 유채꽃이 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면 또 마을이 조금 더 활기를 얻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지금 두모마을은 캠핑장도 운영하고 있고, 서울농장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유채꽃은 단순한 봄 풍경이 아니라, 두모마을을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시작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같은 계절이 돌아오지만, 그 꽃을 마주하는 마음은 늘 새롭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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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사람과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겁 없이 밀어붙이며 일을 추진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마을의 고령화도 있고, 주민들의 체력이나 생활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을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하는 곳이더라고요. 마을이 잘되려면 일도 있어야 하고, 사람들끼리 연결도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두모마을은 그런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고, 함께 일하는 사무장님도 늘 같은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두모마을과 파라다랑스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로 오래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꽃과 더불어 그 꽃을 함께 지켜낸 사람들이 있는 마을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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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마을
"남해 벚꽃은 왕지마을이 최고입니다" |
홍현마을
"초록 잎과 하늘이 예쁜 곳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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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은 많은 이들에게 남해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각인된다. 바다를 따라 층층이 이어진 논배미와 계절마다 달라지는 빛, 그리고 봄이면 노랗게 번지는 유채꽃까지.
이 장면은 오랜 시간 이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노동과 인내, 그리고 쉽게 놓지 않은 애정이 쌓여 온 것으로, 지금의 다랭이마을을 이루었다. 김정주 이장은 그런 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온 사람이다. 다랭이마을에서 나고 자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마을을 돌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지금의 다랭이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에게 이곳은 명승지이기 전에 먼저 삶의 자리이고, 손으로 일구어온 역사 그 자체다. 아름답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고단한 시간까지 함께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그래서 더 크다. 풍경으로만 보면 놓치기 쉬운 마을의 시간, 그 안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논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음이 궁금해졌다. 다랭이마을 김정주 이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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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를 지키는 일상이 된 마을의 하루
저는 다랭이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김정주입니다. 지금 다랭이마을은 마을 자체가 명승지이자 관광지이다 보니, 찾아오는 분들을 ‘맞이하는 일’이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불만사항이나 불편한 점은 없는지 미리 살피고, 혹시 모를 안전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준비하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현재 마을에는 52호, 85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는 가구는 많지 않습니다. 저 역시 이장 역할과 함께 다랭이마을 보존회 활동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랭이마을은 조용히 농사만 짓는 마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되었기 때문에 살아가는 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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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머물게 한 것은 결국 '사람의 정'이었습니다
결혼한 뒤 1998년 8월에 귀농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집안일을 핑계삼아 잠시만 들어와 살 생각이었습니다. 한 5년 정도만 있다가 다시 나가야지 생각했지요. 그런데 막상 들어와 살아보니, 마을 어른들의 정이 너무나 컸습니다. 제 딸을 마을 모두의 손녀처럼 돌봐주시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마음을 써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나가려고 할 때 그분들의 도움이 자꾸 마음에 남았습니다.
결국 그 정 때문에 계속 이곳에 살게 되었고, 이제는 오히려 도시로 나가는 것이 더 싫어졌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분들도 많지만, 그때 받았던 따뜻함은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마을을 살피고 주민 한 분 한 분을 챙기면서, 그때 받았던 은혜를 조금씩 돌려드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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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논은 아름다운 동시에 삶의 무게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다랭이논 농사를 지을 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셨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이 가파른 언덕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랭이논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손도 많이 가고 수확량도 넉넉치 않습니다. 그래서 논 하나하나에는 단순한 농사 이상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고 느낍니다.
저 스스로를 두고 가끔은 참 미련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이 다랭이논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큽니다. 어릴 때는 서럽게 느껴졌던 농사의 기억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힘든 시간까지 포함해 이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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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은 관광의 신호이자 농사의 신호입니다
다랭이마을의 유채꽃은 많은 분들에게 봄의 볼거리로 기억되지만, 제게는 조금 더 복합적인 신호입니다. 유채가 피면 이제 관광객들이 많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벼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유채꽃의 상태를 보면 땅의 상태를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구간의 유채가 잘 자라지 않는 걸 보면, 토양 영양이 부족한가 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판단이 듭니다. 그래서 유채꽃은 단순히 예쁜 풍경이 아니라, 계절과 농사의 상태를 알려주는 살아 있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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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다랭이마을의 봄은 삶과 환대가 함께 있는 계절입니다
예전에는 봄이 오면 자연스럽게 올해 벼농사를 어떻게 준비할지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유채꽃이 피면 관광객 생각이 먼저 듭니다. 특히 어르신들은 꽃이 피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가피한 생활의 불편을 먼저 떠올리시기도 합니다. 그만큼 다랭이마을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관광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그럼에도 결국 마을 분들은 손님이 오시면 좋아하십니다. 불편함이 있어도 외면하지 않고 맞이하려는 마음이 더 큽니다. 저는 그 점이 다랭이마을의 중요한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와 바람, 층층의 논과 유채꽃도 물론 다랭이마을의 봄을 이루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환대가 함께하는 순간 비로소 진짜 다랭이마을의 봄이 완성된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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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것은 사람의 자리이고, 남아야 할 것은 마을을 향한 애정입니다
오랜 시간 다랭이마을을 보며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명승지로 알려지기 전부터 정말 힘들게 농사짓고 마을을 일궈온 분들이 중심에 계셨습니다. 지금은 그 기반 위에서 관광과 연관된 소득을 얻는 구조가 커졌습니다.
물론 시대가 달라졌으니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다랭이마을이 있기까지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더 편하게 농사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도 끝내 이 마을을 떠나지 않았던 분들의 애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겨울에도 따뜻하고, 끝내 이 마을이 좋다고 말하던 분들의 마음이 결국 지금의 다랭이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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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남아 있어야 할 다랭이마을의 다음 풍경
앞으로 제가 지켜가고 싶은 다랭이마을의 풍경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이곳이 지금처럼 아름다운 경관으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로 오래 남는 것입니다. 논이 있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고, 오시는 분들을 맞이하는 마음이 있고, 그 모든 것이 함께 이어지는 마을이면 좋겠습니다.
다랭이마을은 그 자체로 이미 많은 시간을 견뎌온 곳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풍경 역시 새롭게 덧입히는 것보다, 지금까지 지켜온 것을 너무 잃지 않으면서 다음 세대로 잘 이어가는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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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마을 파라다랑스
"두모마을이 다랭이마을과 비슷합니다" |
남해 예계마을
"1024번 지방도를 따라 이어지는 벚꽃 터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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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봄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먼저 벚꽃길이나 유채꽃 명소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봄은 화려한 꽃이 아닌, 오래 머문 자리에서 천천히 발견되는 작은 들꽃 같은 풍경에 더 가깝다. 남해로 이주한 지 5년, ‘시간의흐름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열 대표 역시 그런 시선으로 남해의 계절을 바라본다. 그에게 사진은 오래도록 곁을 지킨 취미였고, 남해는 그 사진이 삶의 일이자 태도가 될 수 있도록 바꿔준 장소였다.
빠르게 소비되는 장면 대신 지금 이 순간의 감각에 집중하게 하는 곳, 꽃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아도 어느새 꽃밭 속에서 살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곳. 김정열 대표는 그런 남해의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이름 역시 찰나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찰나의 꽃 같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천천히 음미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유명한 봄 명소보다 일상 곁의 작은 꽃을 더 오래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태도. 이번 인터뷰에서는 ‘시간의 흐름 사진관’ 김정열 대표의 남해와 봄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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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정착한 사진관 운영자, 김정열입니다
안녕하세요. 남해로 이사 온 지 5년차, ‘시간의흐름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열입니다. 원래는 진주에 있었고, 일을 하면서 서울과 대구, 사천 등 여러 지역을 오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사진을 찍기 위해 남해를 자주 찾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곳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 그리고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지 않는 시간의 결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정착을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부동산도 4년 정도 꾸준히 알아봤습니다. 여행지로 좋았던 남해가, 제게는 점점 살아보고 싶은 장소로 바뀌어 갔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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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긴 취미였고, 남해에서 삶의 일이 되었습니다
제게 사진은 유일하게 오래 살아 남은 취미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했지만, 꾸준히 붙잡고 있었던 건 사진뿐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 권유를 받아 처음 시작했고, 한동안 카메라를 모두 정리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더군요. 특히 아내를 만나고 나서는 더 예쁘게 찍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고, 자연스럽게 인물 사진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주말마다 사진을 찍고 평일에는 회사 생활을 병행했는데, 회사가 어려워진 뒤 1년 정도 저에게 일을 주시던 사진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사진 일을 배우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질리지 않고 가장 오래 해온 일이었고, 결국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도 사진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물론 남해에 와서는 조금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엔 ‘사진’이 만나기만해도 즐거운 친구 같았다면, 이제는 서운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더 깊이 알게 된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취미였던 사진이 일이 되며 무게도 생겼지만, 그만큼 더 진지한 관계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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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흐름’이라는 이름에는 천천히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시간의흐름’이라는 이름에는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온전히 느껴보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진은 찰나를 담는 일이지만, 저는 그 사진을 보는 지금의 시간과 사진이 찍히던 그때의 시간이 함께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 시간을 너무 빨리 지나치지 않고, 조금은 천천히 머물러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회사 생활을 할 때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저렇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살고 싶다고요. 어쩌면 지금의 사진관은 그때 막연히 바라던 삶의 방식이 조금씩 형태를 갖춘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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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머무는 감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촬영을 하며 여러 지역을 다녔지만, 남해만큼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게 하는 곳은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정착했고, 제가 남해에서 느꼈던 감각을 사진을 매개로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공간을 구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본 건 위치보다 너비였습니다. 원래 이곳은 카페였는데, 단순한 촬영 공간보다 조금 더 머물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책도 두고, 소품도 놓고, 뜨개 같은 취향도 얹으면서 조금씩 지금의 분위기를 갖추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감각입니다.
그래서 촬영도 서두르지 않으려 합니다. 어떤 촬영이든 바로 카메라를 드는 대신, 먼저 충분히 대화를 나눕니다. 어디서 오셨는지, 왜 남해를 여행지로 골랐는지, 어떻게 만나셨는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면 몸과 마음이 조금씩 ‘온전히 지금’에 집중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고요와 틈이 있어야 집중이 생기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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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봄은 어디를 가도 꽃밭 속에 살아가는 기분을 줍니다
제 눈에 비친 남해의 봄은 그야말로 꽃밭 같은 계절입니다. 남쪽바다라는 이름의 남해가 봄이 되면, 옛 이름인 ‘화전’이 절로 떠오를 만큼 온통 꽃으로 가득해집니다. 특별히 꽃을 보러 찾아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길을 걷다가, 마을을 지나다가, 어느 집 담장 옆을 스치다가도 꽃이 보입니다. 그래서 남해의 봄은 특정한 명소의 계절이라기보다, 꽃밭 속에서 살아가는 계절처럼 느껴집니다. 어느 한 장면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전체가 계절의 표정을 갖는다는 점에서 더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유명한 꽃 명소도 물론 아름답지만, 저는 빠른 걸음으로는 보이지 않는 풍경을 더 좋아합니다.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러야만 보이는 장면, 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작은 꽃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얼마 전 파라다랑스를 걷다가 유채꽃밭 사이에 조용히 피어 있던 하얀 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작고 소박한 꽃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장면이 참 예쁘더군요. 저는 그런 풍경에 더 마음이 갑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장면보다는, 명소의 옆자리에 조용히 피어 있는 작은 꽃 같은 풍경이 더 오래 남습니다. 아마 사진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눈에 확 띄는 장면보다, 오래 바라볼수록 마음이 가는 장면을 좋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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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사람들의 시간을 진심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거창하고 뚜렷한 계획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제 성향도 그렇고, 지금은 너무 멀리 보기보다 눈앞의 시간을 잘 담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찾아오시는 분들의 시간을 소중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담아드리고 싶습니다. 사진관 역시 너무 서두르지 않고, 이 공간만의 리듬을 지켜가며 운영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내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더 귀하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바람도 큽니다. 결국 제가 지키고 싶은 건 대단한 계획이라기보다, 제 앞에 온 사람과 시간에 더 집중하며 살아가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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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산성
"저는 대국산성 벚꽃나무를 추천합니다" |
두모마을 파라다랑스
"오래 볼수록 마음이 가는 장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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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봄을 말할 때 어떤 사람은 꽃길을 떠올리고, 어떤 사람은 너른 바다를 떠올린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 봄은 풍경을 감상하는 계절을 넘어, 자기 안에 오래 품어온 감각이 초록 새싹처럼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최지아 작가에게 남해는 그런 곳이다.
고향 남해를 오래 그리워했고, 언젠가는 꼭 돌아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시간 끝에 다시 이곳에 왔다. 그리고 지금은 ‘최지아 갤러리’와 ‘화가의 정원’이라는 이름 아래,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정원을 돌보며 자신의 리듬으로 하루를 일궈나가고 있다.
음악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사람이지만, 그림은 늘 내면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존재했다. 남해에 내려온 뒤 그 두 감각은 더 이상 별개가 아니었다. 소리와 색, 리듬과 선, 그리고 계절과 꽃까지 모두 한 사람의 일상 안에서 연결되기 시작했다. 음악과 그림, 정원과 일상, 그리고 고향에서 다시 살아간다는 선택이 한데 어우러진 삶. ‘최지아 갤러리’와 ‘화가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최지아 작가의 목소리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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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남해에서 예술과 일상을 함께 가꾸는 공간입니다
저는 남해가 고향이고, 늘 남해를 참 좋아해온 사람입니다. 예전부터 “남해에 오려면 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을 만큼, 제게 남해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남해에서 여러 활동을 하며 제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다른 지역에서 바쁘게 일했지만, 30대 후반부터는 남해에 내려와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와 지금의 공간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현재 이곳은 ‘최지아 갤러리’와 ‘화가의 정원’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1층에서는 작품을 만날 수 있고, 2층에서는 체험과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이 공간이 단순히 그림을 걸어두는 장소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예술과 일상을 함께 나누는 자리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image ⓒ 남해로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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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보다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담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를 또렷하게 정해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3년 무렵에는 조금 더 크게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1층은 생활을 위한 공간, 2층은 음악을 위한 공간, 3층은 미술을 위한 공간처럼 층마다 역할을 나누는 상상도 했습니다. 건축에 대한 생각도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습니다. 유럽을 다니며 찍어둔 건물 사진이 수천 장쯤 될 만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거쳐오면서 결국은 더 단순하게 가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의 집’, ‘화가의 정원’ 같은 이름도 떠올렸지만, 여러 의미가 겹치다 보니 가장 솔직하게 ‘최지아 갤러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이후 1층엔 그림을 만나게 하고, 2층은 체험과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나누며 지금의 형태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름을 정하는 과정도 결국엔, 제가 무엇을 가장 재미있게 오래 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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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제게 쉼이었고, 결국 오래 남은 또 하나의 언어였습니다
저는 원래 음악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피아노와 음악을 가르치며 살아왔습니다. 서울에서는 입시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늘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이 중심이었지요. 그런데 그림은 음악과 별개로,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제 안에 있던 일이었습니다. 큰 도화지가 없으면 벽에라도 그림을 그리며 놀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음악을 전공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도 계속 놓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음악도 하고 그림도 하니 제발 쉬라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쉬는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숨을 돌리는 시간이었지요.
그러다 개인전을 열게 됐고, 기대를 넘는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전시를 계속 이어가게 됐습니다. 어느새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게 되었고, 해외 전시까지 이어졌습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그림 작업은 조용히 이어가야 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그림은 제게서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언어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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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그림은 다른 영역이 아니라, 서로를 넓혀주는 감각입니다
많은 분들이 음악과 그림을 전혀 다른 예술로 생각하시지만, 저는 오히려 두 감각이 아주 많이 닮아 있다고 느낍니다. 음악을 가르칠 때도 단순히 테크닉이나 건반의 느낌만 설명하는 것보다, 색이나 빛으로 비유해서 설명하면 훨씬 더 잘 전달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밝음과 어둠, 화성과 대비 같은 개념은 음악과 미술에서 모두 통하는 감각이더라고요. 물론 차이도 있습니다. 음악은 비교적 더 단단한 기초와 반복 훈련이 중요하고, 미술은 기본기 위에 자유로운 상상과 예술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두 영역이 만나면 서로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림 수업을 하다가 음악 이야기를 하고,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그림으로 넘어가곤 합니다. 음악사와 미술사, 유럽의 역사와 감각도 함께 엮어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입시를 위한 연마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들에게 인문과 교양, 상상과 감각을 넓혀주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제 작업 안에서 높은음자리표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닿아 있습니다. 저에게 높은음자리표는 시작이고, 확장이고, 꿈이고, 에너지입니다. 바다를 그리다가 문득 음표를 그리고 싶어지는 것도, 제게 음악과 그림이 결국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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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일과 정원을 가꾸는 일은 시간을 들여 돌본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일과 정원을 가꾸는 일이 참 많이 닮아 있다고 느낍니다. 둘 다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고, 손이 계속 가야 하며, 기다림과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원은 예쁜 꽃이 피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시들면 뽑아야 하고, 계절에 맞게 다시 심어야 하고, 계속 돌봐야 합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할 때가 있고, 때로는 감성이 더 중요한 순간도 옵니다.
저는 음악을 하며 반복 훈련에 익숙했던 사람이라, 나무 하나를 그리더라도 수십 번 그리며 손에 익히는 편입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형식을 조금씩 깨며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게 됩니다. 정원도 처음에는 계획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꽃이 스스로 자라는 방식과 계절의 흐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결국 두 일 모두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고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되어 간다는 점에서 많이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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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꽃은 꾸미지 않아도 이미 아름다운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해에서 피는 꽃들은 도시에서 보던 꽃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일부러 정돈하고 연출한 아름다움보다, 그냥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피어 있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목련이나 벚꽃도 크기가 크고, 힘이 있고, 무엇보다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남해 전체가 자연스러운 정원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제 그림이 조금 더 자유롭게 흘러가듯, 남해의 꽃도 누가 애써 모양을 만들지 않아도 자유롭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남해의 봄을 생각하면, 고요히 다가오지만 분명한 힘을 가진 계절이라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여린 것 같지만 세찬 바람을 뚫고 올라오고, 앙상한 가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듯 피어나는 힘. 저는 그게 남해의 봄이 가진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전시 제목으로도 ‘달달한 봄’, ‘노래하는 봄’, ‘봄은 이렇게 꿈꾸듯이 온다’ 같은 말을 붙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제게 남해의 봄은 강하게 밀어닥치는 계절이라기보다, 어느 순간 곁에 와 있는 계절에 가깝습니다. 조용하지만 힘이 있고, 은근하게 스며들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봄이지요. 그래서 저는 남해의 봄을 한 장면으로 말하자면, “온 동네가 자연스러운 정원이 되어 달달하게 다가오는 계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제 공간의 정원도 몇 차례에 걸쳐 다시 심고 가꾸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섬이정원의 감각을 좋아해서 정원 디자인에도 일부 영향을 받았고, 올해도 새로운 식물들을 더 심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전시가 바쁠 때는 잠시 손을 못 대더라도, 다시 돌아와 정원을 돌보는 시간은 늘 소중합니다. 제게 남해의 봄은 멀리서 감상하는 풍경이 아니라, 이렇게 손으로 만지고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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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보다 지금 재미있고 행복한 일을 더 잘하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계획을 너무 단단하게 정해두는 편은 아닙니다. 이 공간 역시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분명한 것은, 내가 행복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러다 보면 다음 계획은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 안에서도 하나의 서비스에 더 집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하기보다, 커피는 커피답게, 전시는 전시답게, 각자의 문화가 제 역할을 할 때 오히려 더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더 충실히 해내며, 이곳에서 제 방식의 예술과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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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정원
"아직 알지 못하는 꽃을 배우러 가는 곳입니다" |
원예예술촌
"사람이 정원과 함께 살아간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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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를 마무리 하며,
'꽃 피는 남해' 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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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남해’는 단순히 벚꽃이 예쁜 축제라기보다, 남해라는 장소가 가진 풍경과 이야기를 함께 꺼내 보인 봄의 행사에 가까웠다. 2026년 행사는 4월 4일부터 5일까지 충렬사 광장과 남해각 일원에서 열렸고, ‘남해 가 봄?’이라는 부제 아래 남해대교와 노량해전 일원의 역사성, 해안 풍경, 봄꽃의 정취를 한데 묶어 보여줬다.
축제장에서는 개막식과 공연, 체험 프로그램은 물론 드론 라이트쇼와 불꽃쇼, 남해대교 경관조명 같은 야간 콘텐츠도 운영돼 낮과 밤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매력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남파랑길 함께 걷기, 남해대교 체험 같은 연계 프로그램까지 더해지며, 잠깐 들렀다 가는 행사가 아니라 남해의 봄 안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만드는 축제로 완성됐다. 이번 축제는 왜 많은 사람들이 봄이면 다시 남해를 찾는지, 그 이유를 풍경으로 보여준 이틀이었다.
그리고 그 봄은 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풍경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시선이 함께할 때, 남해의 계절은 조금 더 깊어진다. 누군가에겐 일상이고, 누군가에겐 위로이며, 또 누군가에겐 다시 마음을 붙드는 장면이 되는 것. 그래서 남해의 봄은 늘 꽃보다 오래, 사람의 기억 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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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행사 소식
① (4.25~4.26) 남해 창선 고사리축제 개최 (클릭)
남해관광문화재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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